“오늘도 역에 다녀왔냐.”

산 위 마을로 피난 온 지 오래됐는데도, 나는 저녁마다 버스 정류장 옆 빈 공터를 역이라고 불렀다. 곡식 창고를 개조한 숙소 문을 나설 때마다 삼촌은 꼭 같은 말을 했고, 나는 대답 대신 장갑을 꼈다. 우리가 떠나온 도시는 지도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지만, 입안에는 아직 플랫폼의 쇳내가 남아 있었다.

처음 몇 해는 날짜를 정확히 세려 했다. 그러나 달력은 눈보라보다 먼저 닳았고, 사람들은 해를 숫자로 말하지 않았다. 봄 장작이 몇 단이었는지, 가을 염소가 몇 마리 남았는지, 겨울 약이 며칠치인지로 시간을 불렀다. 그래서 내 기억도 그 방식으로 눌렸다. 이십 년이 한 해처럼 접히고, 하루가 세 계절처럼 늘어났다. 누가 물으면 나는 오래전 일을 어제 본 것처럼 말했고, 어제를 십수 년 전처럼 말하기도 했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내가 저녁만 되면 골짜기 끝으로 내려가는 이유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거기에는 철길도 전깃줄도 없는데, 나는 귀를 기울이면 지하철 브레이크가 문지르는 마른 금속음이 들린다고 했다. 처음엔 모두 웃었다. 그다음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너무 오래 버티느라 귀가 딴 곳과 이어졌는지, 누구도 판정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창고 벽에 붙은 얇은 수첩 한 장을 들여다보다가, 예전부터 적어 둔 다섯 단어를 다시 소리 내 읽었다. 곧장, 느리다, 방울, 들여다보다, 지하철. 단어들은 문장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없어져도 입 모양만 남고, 입 모양이 사라져도 물건 이름은 돌처럼 남았다. 나는 단어를 읽을 때마다 내가 아직 같은 사람인지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바깥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급수 통을 옮기던 아이가 미끄러졌고, 병목에 매달아 둔 작은 유리 방울 하나가 바닥을 굴러 어둠으로 사라졌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대신 나를 보며, 도시에서 기차가 들어올 때도 이런 소리가 나느냐고 물었다. 나는 곧장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플랫폼의 소리는 더 넓고, 더 깊고, 더 늦게 가슴에 닿았으니까. 그래도 비슷하다고 했다. 완전히 다르다고 말하는 일보다, 조금 닮았다고 말하는 일이 그 애의 밤을 덜 춥게 만들 것 같았다.

이후 나는 공터에 혼자 서는 시간을 줄였다. 대신 아이들과 눈 위에 선을 긋고, 보이지 않는 선로를 그렸다. 출발선과 도착선을 정해 두고, 한 사람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내고, 다른 사람은 지연 안내 방송을 흉내 냈다. 웃음이 먼저 나오지는 않았지만, 침묵이 오래 버티지도 않았다. 느리다 싶은 변화였고, 그래서 더 믿을 만했다.

마침내 첫 해빙비가 온 날, 골짜기 아래 진창에서 잃어버린 방울이 다시 발견됐다. 금이 가 있었지만 빛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수첩 옆에 두고 창문을 닫았다. 오늘 저녁에도 누군가 역에 다녀왔냐고 물으면, 나는 아마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 다만 예전처럼 혼자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선로가 실제로 이어지지 않아도, 함께 기다리는 자세만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