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연도 건조기 3분기 행정기록 발췌. 북서 구획 정착지 인원 2,194명, 배급 가능 물 34,000리터, 소금 219포, 기름 41통. 외곽 관측탑의 유리 파손 2건, 경비 교대 누락 1건, 새벽 소란 4건. 보고서 하단에는 작성자 서명이 있어야 한다. 서명란에 나는 늘 같은 모양의 획을 남긴다. 획의 끝을 꺾을 때마다 손목이 살짝 떨리지만, 기록부는 떨림을 허용하지 않는다. 기록부에는 바람의 냄새가 적히지 않는다. 모래가 사람 이빨 사이에서 갈리는 소리도, 목이 마른 사람들이 마치 서로에게 빚을 지운 듯 눈을 피하는 습관도 적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매일 아침 공식 문장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문장 바깥에서 실제의 시간을 따로 기억한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대답을 미룬다. 대답을 정직하게 하려면 먼저 내가 얼마나 자주 거짓말을 했는지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착지의 아침은 먼지보다 먼저 장부에서 열린다. 나는 창고 방의 쇠문을 열고, 밤새 도착한 물자 목록을 받아 계단 옆 긴 책상에 펼친다. 계단 아래에는 물통을 실은 수레들이 줄지어 선다. 바닥을 끄는 쇳바퀴 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골목으로 쏟아져 나오고, 그 소리는 곧 거리의 호흡이 된다. 누군가는 물을 받기 전에 분실 신고를 하고, 누군가는 배급표의 잉크가 지워졌다고 울분을 토한다. 그러나 장부는 감정의 순서를 모른다. 장부는 날짜와 수량만 기억한다. 나는 그 냉정함을 오래 빌려 왔다. 오늘 남길 숫자만 맞으면 내일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고, 지킬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유지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믿음은 자주 계산서처럼 접힌다. 접힌 자국 사이로 사람 얼굴이 끼어들면, 숫자만으로 버티는 마음은 금세 얇아진다.
우물 앞 줄은 늘 같은 길이로 늘어서지만, 줄의 표정은 매일 다르다. 그날은 남쪽 벽에 걸린 쇠시계가 고장 난 채 여섯 시에 멈춰 있었고, 사람들은 멈춘 시간을 기준으로 서로를 탓했다. 내가 물표를 검사하던 순간, 열 번째 칸의 노파가 뒤 사람과 팔꿈치가 부딪쳐 쓰러졌다. 그때 내가 먼저 노파를 일으켰는지, 경비가 먼저 달려왔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내 기억에서는 내가 두 손으로 노파의 겨드랑이를 받쳤고, 경비는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야간 보고에는 경비의 신속 대응으로 정리 완료라고 적혀 있다. 보고서를 쓴 사람이 나라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내 기억을 바꿔 쓴 것인지, 애초에 내 기억이 틀린 것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다. 나는 이런 식으로 하루를 넘긴다. 사실을 정리하는 사람이 사실을 의심하게 되는 곳, 그게 이 정착지의 가장 오래된 질서다.
한편, 동쪽 창고의 맨 끝 방에는 폐기 물품이 쌓인다. 부러진 렌즈, 찢긴 장막, 축전지, 낡은 지도, 뚜껑 없는 약통. 그 방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늘 습하다. 사막에서 습하다라는 말을 쓰는 일이 어색하겠지만, 지하에 가까운 그 방에는 오래 젖은 천의 냄새가 떠다닌다. 누군가 버린 음성기기도 거기에 있었다. 둥근 손잡이가 달린 오래된 오디오였다. 재생 단추를 눌러도 처음에는 바람 같은 잡음만 났고, 그다음에는 수십 년 전 목소리인지 지난주 녹음인지 알 수 없는 남자의 낭독이 흘렀다. 그는 이주 열차의 시각과 보급량을 읽다가, 중간에 갑자기 자기 딸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 뒤로 침묵이 이어졌고, 다시 사무적인 숫자가 이어졌다. 나는 그 음성이 장부보다 더 진실하다고 느꼈다. 숫자와 애도의 문장이 한 트랙에 섞여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압축해 보여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오디오를 들은 날 저녁, 나는 서고 창문에 기대어 모래폭풍 예보를 확인했다. 먼 하늘의 구름은 거의 없었지만,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창문 아래 좁은 골목에서 아이 둘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큰아이가 작은아이 손에서 천 주머니를 빼앗았고, 주머니가 터지며 검은 알갱이가 바닥으로 흩어졌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식량 찌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울면서 외친 말은 씨앗이었다. 누군가 북쪽 경계 밖 폐허에서 가져온 씨앗, 물만 있으면 자랄지도 모른다는 소문으로 거래되던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떼어 놓고 알갱이를 주워 주머니에 다시 담아 주었다. 그 장면은 우연히 지나가던 노동반 반장의 눈에도 들어갔다. 그는 씨앗 반출은 규정 위반이라며 주머니를 압수하려 했다. 아이들은 주저하다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순간 나는 장부 담당자의 목소리로 말했다. 압수 대상이 아니라 샘플 등록 대상이라고. 그 말은 절반은 규정이고 절반은 임기응변이었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같은 문장을 여러 사람에게 되풀이했다. 샘플 검토 중이라서 당장 공개할 수 없다는 문장. 실제로 검토를 한 것은 아니다. 씨앗은 내 책상 아래 철함에 넣어 두었고, 나는 틈날 때마다 뚜껑을 열어 알갱이를 살폈다. 비슷한 크기의 돌멩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제대로 된 생명의 모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본 것이 씨앗이 맞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나는 그것을 보관한다는 이유로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생존은 대개 거대한 결심보다 작은 핑계를 필요로 한다. 나는 그 핑계를 행정 문장으로 덮어 두었다. 낮에는 규정을 읽고 밤에는 상상을 읽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면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흐려진다. 아침의 먼지 냄새가 어젯밤의 꿈에 붙어 나오고, 꿈에서 본 계단의 그림자가 실제 거리의 모서리와 겹친다. 나는 내가 깨어 있는지부터 확인한 다음에야 장부를 펼치게 됐다.
그주 목요일 밤, 남서쪽 벽이 무너졌다는 경보가 울렸다. 사람들은 소지품을 안고 중앙 광장으로 뛰었고, 경비는 인원을 세려다 오히려 더 큰 소란을 만들었다. 나는 창고 방에서 물통 표식을 챙기다가, 천장 틈으로 떨어진 흙먼지에 눈을 감았다. 누군가 손전등을 켜서 복도를 비추다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빛은 내 얼굴을 스치고 계단 난간, 젖은 벽, 바닥에 흩어진 서류를 차례로 훑었다. 그 빛의 순서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의 공포가 나중에 장면을 덧칠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덧칠된 기억이라도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라면, 나는 그 밧줄의 진위를 끝내 묻지 않을 것이다.
소란이 잦아든 뒤, 우리는 임시 회의실로 불리는 긴 방에 모였다. 방이라고 해도 천막 둘을 이어 만든 공간이라 바깥 바람이 그대로 스며들었다. 회의는 늘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피해 규모를 최소화하고 배급 질서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날은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질서를 유지하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이름을 누가 기록하느냐고. 노인의 말은 짧았지만 방 안 공기를 단숨에 바꿨다. 경비대장은 발언 중지를 명령했고,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마침 내 앞의 책상 위에는 빈 양식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양식지의 제목란에 규정 번호 대신 노인이 말한 문장을 적었다가, 곧바로 줄을 그어 지웠다. 종이에는 지운 흔적이 남는다. 흔적은 제출하면 문제고, 버리면 증거가 없다. 나는 흔적이 남은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날 거리에서는 벽 보수 작업이 시작됐다.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줄이 시장 골목 끝까지 이어졌고, 물자 창고 앞에는 반출 대기표가 산처럼 쌓였다. 나는 반출표를 찍어 주다가 낯익은 얼굴을 봤다. 몇 달 전 북부 정착지에서 왔다던 여자였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학교에서 도서 보관 일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내 책상 아래 철함을 알아채고,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안에 뭐가 있느냐고. 나는 관성처럼 폐기 영수증이라 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 거짓말을 바로 넘기지 않았다. 당신은 거짓말을 할 때 왼손 검지로 나무판 모서리를 두 번 두드린다고, 내가 모르는 버릇을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잠시 웃었다. 웃음은 방어처럼 나왔고, 곧 사라졌다. 그 뒤로도 그녀는 자주 내 앞을 지났고,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질문을 멈춰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질문이 되었다.
며칠 뒤, 우리는 북쪽 폐수로 옆 빈 땅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예전에는 물길이었으나 오래전에 말라붙은 자리였다. 흙은 단단했고 삽은 자꾸 돌멩이에 걸렸다. 그러나 작업반은 이유를 묻지 않고 파라고 했다. 그날 오후, 나는 결국 철함을 들고 그 땅으로 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씨앗 몇 알을 손바닥에 올렸다. 바람은 거칠었고 땅은 차가웠다. 나는 그런 조건에서 무엇이 자랄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알갱이를 흙 사이에 밀어 넣고 물통에서 한 모금씩 떨어뜨렸다.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역시 확신할 수 없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린 것 같았고,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날 저녁 장부에 작업 완료라고만 적었다. 씨앗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쓰지 않았다.
시간은 반복의 얼굴로 우리를 길들인다. 오전 배급, 오후 보수, 저녁 점검, 야간 순찰. 나는 매 순서를 수행했고, 매 순서에서 작은 변칙을 만들었다. 분실 신고 건 중 즉시 폐기 예정이던 문서 두 건을 보류로 돌리고, 물표가 찢어진 노인의 신청서를 재검토로 넘기고, 창고 바닥에서 발견된 미등록 약통을 누락 대신 임시 저장으로 기록했다. 하나씩 보면 미미한 수정이지만, 수정은 방향을 가진다. 그 방향은 늘 안전과 충돌했다. 누군가는 내 장부를 뒤져 왜 같은 구역에서 보류 건이 늘었는지 물었다. 나는 바람 탓, 장비 탓, 인원 재배치 탓을 차례로 말했다. 그중 어느 것도 완전한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부를 합쳐도 진실은 아니었다. 진실은 내가 숫자보다 사람의 얼굴을 더 오래 보게 되었다는 사실인데, 그 사실은 보고서의 문법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건조기가 끝나갈 무렵, 정착지 외곽에 작고 희미한 녹색 점이 생겼다는 소문이 퍼졌다. 나는 처음엔 소문이 사람을 살리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먹을 것이 모자랄수록 사람들은 이야기로 배를 채운다. 그러나 어느 저녁, 북쪽 폐수로를 지나는 길에 나는 흙 틈에서 실제로 가는 줄기 하나를 봤다. 손톱만 한 잎 두 장이 모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떨고 있었다. 내 눈이 틀렸을 가능성도 컸다. 빛이 낮게 깔린 시간이라 색의 경계가 자주 속이기 때문이다. 나는 손전등을 켜고 잎 가까이 가져갔다. 빛을 비추다 보니 잎맥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기쁨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이 줄기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퍼지면, 보호보다 소유가 먼저 시작될 것을 알았다. 희망은 늘 분배의 문제를 불러온다. 분배는 다시 폭력을 부른다. 나는 손전등을 끄고 그 자리를 표시하지 않은 채 돌아왔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사흘 뒤 작업반 두 명이 그 부근을 파헤치다 줄기를 발견했고, 곧 위원회가 소집됐다. 위원회는 보호 구역 지정과 관리 인력 선발을 논의했다. 경비대장은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무장 배치를 늘리자고 했고, 급양 담당은 관수량 조절 계획을 내놨다. 그리고 나는 기록 담당으로서 발견 경위를 진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 내가 택한 진술은 반쯤은 사실이고 반쯤은 침묵이었다. 우연히 순찰 중 확인했다고 말했다. 씨앗의 출처와 보관 과정, 아이들의 울음, 반장의 눈빛, 철함의 무게는 모두 생략했다. 생략도 기록의 기술이다. 나는 그 기술로 여러 해를 먹고살았다. 그러나 진술을 마친 뒤 회의실 문을 나설 때, 내 주머니 안에서 접힌 종이가 손끝을 찔렀다. 노인의 문장을 적었다 지운 그 종이였다. 그 종이가 이상하게 뜨거웠다.
밤이 되자 도서 보관 일을 했다는 여자가 내 방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말을 아끼는 사람인데 그날은 드물게 길게 말했다. 당신은 사실을 정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이 부서질 때 어떤 조각을 남길지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더 외로워 보인다고. 나는 웃지 못했다. 방 안은 다시 습하다 싶을 만큼 숨이 막혔다. 밖은 건조한데 방은 왜 이렇게 눅눅한지, 아마 종이와 사람 냄새가 오래 섞이면 공기도 무거워지는 모양이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철함 이야기를 했다. 씨앗이 어디서 왔는지, 내가 무엇을 숨겼는지, 무엇을 지웠는지. 그녀는 끝까지 끼어들지 않고 들었다. 말이 끝났을 때 그녀가 한 유일한 말은 간단했다. 이제부터는 어떤 문장을 지우지 않을지 정하면 된다고.
그 이후 나는 장부의 체계를 부수지 않았다. 대신 체계 안에 남는 문장을 조금씩 바꿨다. 반출 불가 대신 검토 필요, 무효 대신 재확인, 분실 대신 보류. 사소한 단어 교체는 삶을 당장 구하지 못하지만, 다음 문장이 들어올 공간을 만든다. 북쪽 줄기는 겨우 손마디만큼 자랐고, 잎은 자주 갈라졌다. 우리는 밤마다 물을 조금씩 옮겨 주었고, 낮에는 접근을 막는 핑계로 주변을 정리했다. 누군가는 저걸 키워도 결국 소수만 먹게 될 거라고 냉소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심지 않는 편이 더 정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직은 종종 행동의 반대말로 오해된다. 나는 오래 그렇게 오해하며 살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밤, 외곽 탑의 등불이 먼지 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린다. 등불은 정착지의 지붕들을 차례로 비추다 마지막에 내 창문에 닿는다. 빛이 지나갈 때마다 창틀의 금이 선명해지고, 금 사이에 낀 모래알이 작은 별처럼 반짝인다. 나는 내가 쓴 보고서들이 얼마나 많은 얼굴을 지웠는지, 또 그 지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얼마나 빨리 무너졌을지 동시에 생각한다. 둘 다 사실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완전한 고백을 하지 못한다. 아마 내일도 몇몇 문장을 숨길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만은 한 줄을 남긴다. 제17연도 건조기 말, 북쪽 폐수로 변두리에서 생장 신호 확인. 관리 주체 공동 지정. 관측 지속. 누가 읽어도 건조한 문장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문장 아래에는 오래 전 오디오의 잡음과 아이의 울음, 주머니 속 종이의 긁힘, 그리고 모래 밑에서 버티는 아주 작은 씨앗의 떨림이 함께 눌려 있다는 것을.
내가 이 이야기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묻는다면, 나는 아마 처음 장부를 펼친 날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그 말이 틀렸다고 느낀다. 시작은 씨앗을 주워 담던 아이의 손등이었을지도, 계단 난간을 붙잡고 숨을 고르던 밤이었을지도, 혹은 당신이 이 문장을 읽는 바로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신뢰할 만한 화자가 아니다. 내 기억은 자주 뒤늦게 도착하고, 도착한 기억은 종종 순서를 바꾼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어떤 변화는 실제로 축적된다고. 체념은 끝이 아니라 자세일 수 있고, 자세는 언젠가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사막의 정착지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낮에는 숫자를 쓰고 밤에는 문장을 쓴다. 숫자는 우리를 오늘까지 데려왔고, 문장은 우리를 내일로 밀어 보낸다. 그 사이를 건너는 동안, 나는 한 번 더 장부를 덮고 창문 너머의 어둠을 본다. 어둠도 때로는 길처럼 반짝인다.